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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raise me up 제주도 여행기2제주여행기-TY 2021. 3. 25. 00:00
올레길 15.16코스 ; 광령-고내-한림.
애월항을 지나 곽지리에 들어서니 진눈개비로 시작한 눈은 순식간에 폭설이 되었다. 바람은 강풍을 넘어 광풍狂風이 되어 몰아친다. 한림의 오일장터는 텅 비어있고 잘 자란 자색의 양배추는 구멍이 송송 나기 시작한다. 길 가의 소나무는 본의 아니게 백송이 되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눈비를 피해 식당으로 들어서니 상호가 우니담이다. 주인장은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상호의 의미를 물으니 우리보고 처음인가 되묻고는 ‘바다를 담은 성게’란다. 성게 미역국에 전복, 옥돔으로 상을 차렸다. 옆 테이블에는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욕망을 말한다.
고내해변은 이국적인 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해변에는 최초의 고기잡이 배인 테우 모형이 있다. 테우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으로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는 구상나무를 재료로 하는 무동력선이다. 협재 해수욕장 가는 길에 이색간판 ‘월령작야月令昨夜’가 눈에 들어온다. 달은 어제 밤에 네게 있었던 일을 묻고 있는 듯하다. 어김없이 이 가게도 코로나19의 파고를 넘지 못하는가보다.
괴오름을 향해 가는 길. 눈이 제법 쌓였다. 승용차 한 대가 고랑에 쳐 박혀 있다. 순간 불안해 지기 시작한다. 속도를 늦추고 이동하는데 목장에는 말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고 멍하게 서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어느새 백석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떠올린다. 가난한 시인은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산골로 가 오두막 짓고 살고 싶다고. 나탸샤는 먼 훗날 천억을 기부하면서 사회를 향해 내 뱉는다. “거금 천억이 아니라 백석 시인의 시 한줄 만 못하다.”고. 시란, 시인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내게는 시 한 줄 표현 할 능력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동문시장-삼성혈-용두암
57년만의 폭설이란다. 하늘 길, 바다 길. 제주로 들어오는 길이 모두 막혔다. 눈비가 와도 폭풍이 몰아쳐도 여행은 계속된다. 계획에도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다. 무조건 바다를 향해서 가자. 이내 신발에 물기가 촉촉하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할 때 즐겨 암송한 ‘야설野雪’이란 시를 읊는다. 오랑캐처럼 난잡하게 걷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광복의 날을 하루라도 앞당겨졌을 것이리라. 나는 오늘도 뚜벅뚜벅 걷는다. 이어도를 알리기 위해 ‘해양주권 이어도를 지키자’는 깃발을 들고. 좁은 영토의 대한민국.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의 보고는 이어도를 지키는 길 밖에 없다. 어느 듯 배가 출출하다. 동문시장에 들어서서 회 한 접시로 끼니를 해결한다.
탐라국의 발상지 삼성혈에 도착했다. 제법 눈이 쌓이고 소나무는 하얗게 분장을 하고 백송으로 변신했다. 삼성혈, 삼성전, 삼사석,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동해 벽랑국의 3공주는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전한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으뜸이다. 재난소득, 기본소득제, 이익공유제가 뭔지 모르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쳐 두루 잘 살고 복지사각지대가 없었으면 좋겠다.
올레14.14-1코스; 한림-저지-서광
눈은 계속 내린다. 길은 엉망진창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설록에 도착한다. 녹차 밭은 온통 눈으로 덮혔다. 설록이 이름값을 한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차를 좋아했던 다산과 추사 그리고 초의선사에 대해서 소개 글이 있다. 소인들은 술이 교제수단이다. 다산과 추사는 차가 교제수단인 셈이다. 필자도 한때 차를 마신 적이 있지만 왠지 밋밋했다. 차를 마시면 마음의 중심이 가라앉고 술을 마시면 열기가 머리로 치솟아 마음의 안정을 찾기에는 차가 제격인 셈이다. 저지오름을 향해서 발길을 옮긴다. 산을 휘돌아가는 길. 한 참을 걸었는데도 길은 쌓인 눈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길을 개척하기 위해 눈밭을 뒤적이다 겨우 찾았다. 어렵사리 정상에 오르니 분화구의 깊이가 엄청나다. 산과 바다를 조망하는 오름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오름을 소재로 하는 화가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오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오시라”는 답변이 왔다. 예술가가 느끼는 오르가즘은 뭘까.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안내하는 여성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추사 김정희로 옮겨갔다. 몇 마디 던졌더니 대화가 진지하게 진행된다. 세한도가 길이길이 전해질 줄이야. 모든 일에는 이야기 거리가 중요하다. 제자 이상적의 의리가 아니었더라면 한 점의 문인화로 묻혔을 것이다. 수선화를 좋아했던 추사. 고결하고 자존심 강한 수선화처럼 살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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