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기-TY

제주도 올레길3

벽암선생 2021. 4. 7. 07:36

올레10-1코스; 가파도-마라도

가파도 가는 배를 놓치고 마라도부터 걷기 시작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최남단 섬. 제주도를 여행할 때 마라도에 입도하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기상이 좋았다.

탐방객들은 하나라도 더 보기위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상인들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최남선 선생의 한국해양사를 인용한 ‘누가 한국을 구원할 것인가?’ 해양(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껏 이어도 사랑 홍보활동을 했지만 사진으로만 봐온 이어도. 모형도를 보는 순간 이어도 현장에 도착한 기분이라 너무나 기뻤다. 환호하고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얼마를 지나 유난히도 빨간 우체통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느린 우체통. 마음으로 느린 편지를 붙여본다. 애월항의 어느 까페에서 본 문구. “하얀 종이배에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낼게. 어느 날, 너의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종이배가 도착한 거야” 누구의 창작품인지 알길없다.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시를 참고-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왔다~~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마음 찾아 갈 줄 알아라-한 듯한 느낌도 든다. 가슴이 두근거릴 친구가 있다면 사랑을 한다는 거지.

마라도를 나와 모슬봉 인근의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도니장어’로 들어갔다. 돼지찌개와 장어탕. 흑돼지와 장어가 제대로 들어갔다.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다.

가장 키 작은 섬, 해발 20.5미터의 가파도. 골목길에는 벽화가 있다. 자리돔 잡이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1960년대 이전에는 통나무와 대로 엮어서 만든 테우, 1960~70년대는 부속선 없이 작은 그물로 잡은 마르바리, 70년대 이후 현재는 부속선 2척으로 큰 그물을 설치하여 잡는 요새바리. 인간의 두뇌는 시대에 따라 발전해 왔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욕구는 기술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가파도의 풍수지리는 유어농파사격遊漁弄波沙格-물고기가 파도를 타고 노는 격-이다. 눈앞에 보이는 무덤은 육지의 것과는 다르다. 4방으로 돌을 쌓았고 봉분이 낮다. 예전의 제주도는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풀밭에 시체를 갖다버렸다고 한다. 매장문화는 세종 때 제주목사 기건奇虔이 부임하면서 생겼다. 외곽을 돌아 봉우리 근처에 몽골가옥인 게르가 있고 입구에는 소망을 적은 리본이 가득 달려있다. 하나 적어 본다. “그냥 이대로” 이 나이에 무엇을 바라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야지. 몇 년 전 같이 근무하던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너의 꿈이 뭐냐고. “그냥 평범하게”라는 답이 왔다. 그 답을 나는 환갑이 지나서 알았다.

 

올레길8.9코스; 화순-대평-월평

화순의 금모래해수욕장은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폭도 좁고 금빛은 찾아볼 수 없다. 월라봉을 넘어면서 동굴진지를 보는 순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솟는다. 작은 체구의 가미가제는 지독한 인간으로 각인된다. 조슨다리-말이 이동하기 좋게 바위를 정으로 쪼아 만든 길-, 몰질-고려시대 말이 다니던 길. 제주지역에 키우던 말을 대평포구에서 원나라로 실어가기 위해 만든 길-이란 팻말을 보면서 수탈의 역사에 가슴이 에린다. 아픈 역사는 뒤로 하고 박수기정을 앞마당으로 군산을 뒷 병풍으로 하고 있는 하얀 집. 그 곳엔 누가 살까. 고급 외제승용차 2대가 주차되어 있다.

대평포구는 조용하고 다이버들이 몇몇이 물질 준비하고 있다. 예래 생태공원, 중문색달 해수욕장을 지나 대포포구에서 회국수로 끼니를 해결한다. 이곳 맛 또한 일품이다.

 

올레길7-1,7코스; 월평-서귀포터미널-여행자터미널

월평포구. 선교사의 집 앞바다. 너무도 고요하다. 얼마를 걸으니 강정천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강정마을. 군사기지로 뉴스에 등장하는 마을인데 주민들의 외침은 오간데 없고 비닐하우스 단지만 즐비하다. 커피집에 들러 잠시 여유를 찾는다. 이제 법환리로 들어서는데 이곳은 이웃 간의 갈등이 심한 모양이다. 두머니頭面怡물-강정마을과 법환마을의 경계선으로 사소한 이해관계로 충돌할 때 양측 대표가 만나서 화합을 다짐하던 장소-은 이름값 하기 위해 구름도 쉬어가고 파도도 잠든 듯하다. 돔베낭 길은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최적인 코스다. 추억의 돌담길처럼 정감이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에 진입금지의 줄이 쳐져 있다. 이상히 여겨 내려가 보니 남자 4명이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저런 망할….

올레센터본부를 지나 고근산으로 향하고 있다. 삼림욕하는 시민들이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삼림이란 생산자인 식물, 소비자인 동물과 분해자인 미생물이 관계를 설정하며 공존하는 곳. 공존하기 위해서는 제각각의 특성과 능력에 맞게 자라고 번식한다. 자연의 이치나 사람의 이치가 매 한가지다. 태양을 향해 끝없이 치솟는 교목이 있고 그늘아래 조용히 나지막하게 자라는 관목도 있다. 먹이사슬에서 포식자가 있는가 하면 끝없이 도망 다니는 무리도 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분해하면서 관계를 지속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산은 서귀포시민의 쉼터다. 할머니 한 분에게 길을 물으니 한라산부터 올레길 설명과 함께 제주도에 심취되어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엉또폭포 가는 길. 이름도 특이하여 호기심이 생긴다. 다가가니 농장이 있고 중앙에 집 한 채가 있다. 기암절벽과 천연 난대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때 묻지 않았다. 피톤치트, 테르핀을 생각하니 머리가 한결 가볍다. 하지만 폭포는 자취를 감췄다. 농장의 무인 찻집. 찻집은 석가려夕佳廬-해질녁이 아름다운 오두막-라는 이름을 붙어놓고 도연명의 음주5수가 있다. 도연명에 심취한 사람인가 하여 전화를 걸었다. 대화를 꺼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 한 구절에 빠진 것일까….

 

올레길5.6코스; 쇠소깍-여행자센터-남원

이중섭 거리를 걷는다. 소牛와 가족으로 각인된 화가 이중섭. 1951년 서귀포로 피난 와서 1년 정도 산 경험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란다. 거리에는 이중섭을 상업소재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거리 한쪽에 술집상호가 재미있다. 몽리夢裏. 꿈속이라 술에 취해 비몽사몽이 되란 말인가. 주인입장에선 매상을 많이 올리라는 건가. 꿈속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이중섭 공원에 팽나무와 밀감나무는 작가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한 평 남짓한 작은 골방에서 맑고 높은 이상을 간직하며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보아 작품은 공간의 아늑함과는 무관한 것 같다. 어떻게 생각을 짓느냐가 문제지. 방에는 그의 사진과 당시 사용하던 전구와 전기줄이 있고 ‘소의 말’이라는 시가 있다. 소는 그의 자화상이고 가족은 경제적문제로 이별의 아픔이 배여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정방폭포가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진나라 시황제의 사자 서불이 한라산으로 불로초를 캐서 돌아 갈 때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단다. 서불공원에는 그 때를 연상하여 황칠나무,오가피,울금,흰민들레,사철쑥,잔대,맥문동,황근,야관문,종가시나무,약용나무와 약초들이 잔뜩 식재되어 있다. 건너편 섶 섬에는 섬지기의 전설이 있다. 빨간 뱀이 용이 되고자 기도를 드렸다. 기도에 감복한 용왕이 섬 동쪽 깊은 바다 속에 숨겨진 야광주를 찾아오면 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랜 노력을 기울였으나 찾지 못하고 10개의 알을 낳고 죽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용왕은 뱀은 섶섬지기로 10개의 알은 섶섬동자로 환생했다고 한다.

제지기 오름. 94.8m의 야트막한 산이다. 보목바다를 내려다본다. 까페의 광고문구가 재미있다. ‘어딘가에 오르다. 무언가를 바라다. 그렇게 오르다 바라는 마음으로 오르바 오르바’

쇠소깍의 바다는 좁고 길쭉하게 늘어선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룬다. 나룻배를 타는 연인들은 그저 평온할 뿐이다.

위미 동백군락은 우리나라 고유의 동백군락지다. 이 군락은 현맹춘씨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해초를 캐고 품팔이를 하여 모은 돈으로 이 군락지를 일군 것이다. 단지 바람막이용으로 심었으나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관광 상품이 되어 우리를 반긴다.

 

올레코스 3.4코스; 남원-표선-온평

남원용암포구에서 스탬프를 찍고 올레길 답사에 나선 여자분들과 격려와 응원을 보내면서 이어도 사랑 홍보활동을 하고 출발 했다. 제주도는 가는 곳곳마다 4.3사태 희생자를 기리는 비가 있다. 토산리에는 특이하게 모자상이 있다. 18-40세의 장정은 끌려가서 희생을 당한 아픈 역사에서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평화공원에서 보았던 목격담. “총을 맞고 한 어멈이 죽었는데 겨울에 아기가 살아가지고 젖을 빨고 있었어요.” 오싹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는데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 하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의 글을 올리고 있다. 고요히 잠든 밤. 별을 바라보면서 한 없이 울고 견뎌낸 어머니는 풀잎에 베일세라 돌부리에 채일 새라 금지옥엽으로 키워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이다. 파도소리는 혼령들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진다. 마을까페 고팡을 지나서 마을회관에 들렀다. 사무실 담당자들은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무뚝뚝한지 말 건네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화장실에서 위안을 찾는 문구를 발견한다. “부모 된 사람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 된 자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너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I LOVE YOU. 사뭇사랑햄수. 내 인생최고의 날’ 인근 호텔의 풀장,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난대림의 오솔길로 이어지는 소망터널 부둣가는 연인들이 걷기 좋은 길이다.

표선면 세화리로 접어드니 광명등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포구에 들어오는 배를 위해 등대역할을 했다. 옛날에는 광명등을 켜는 사람을 ‘불칙이’라고 했는데 마을에서 나이가 들고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했다. 직장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늙은 말의 지혜도 있지 않는가. 이곳 사람들은 이 말을 실행했던 것이다.

또뜻노랑 가마리.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자란다는 황근黃槿-노란 무궁화-의 자생지다. 은근과 끈기의 상징이라 우리민족의 근성을 닮아 국화로 지정되어 있다. 표선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가장 포근하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에머럴드 빛이 층층이 그리고 칸칸이 색을 달리하여 어휘구사의 한계를 느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표선해수욕장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경관과 백사장을 자랑하고 있다.

신풍신천 바다목장. 광활한 대지에 목장은 물빛 바다와 풀빛 초목장의 어울림이다. 짐승들이 살기에 최적이다. 겨울이라 소나 말 한 마리 보이지 않고 감귤껍질만 태양욕(?)을 즐기고 있다. 행인의 입장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달갑지 않다. 저 멀리 3명의 인부는 흰 장화에 가래삽을 들고 감귤껍질이 잘 마르도록 가래질 하고 있다. <맹자>에 솔수이식인率獸而食人-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 먹음-이란 말이 스친다. 혹여 짐승을 몰아 사람 잡는 일은 하지 않겠지. 하도 세상이 뒤숭숭 하니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

신상,온평,신산 환해장성. 이 또한 제주의 뼈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약 120km에 쌓은 석성이다. 고려원종11년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하는 삼별초군이 탐라로 진입하는 몽고군에 저항하기위해 쌓은 성이 시초이다. 이후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활용하였고 현재는 10여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허구한 날 침범으로 피해만 입고 살아온 선조들의 삶이 안타깝다. 이것을 교훈삼아 '이어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산리 일대에는 바다 살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백화현상-연안 암반지역에 무절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해조류와 어패류가 사라지고 어장이 황폐화되는 것을 방지한 노력. 바다에 해조를 심어 해중림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하는 해중림 조성사업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 수산자원의 안정적인 공급과 회복을 도와준다고 한다.

 

올레코스 1.2코스; 온평-광치기-시흥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정아농원 일대는 태양열 시설이 즐비하다. 돈의 유혹. 농지는 농지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하기야 이것도 제 3자니까 편하게 말하지만 당사자는 돈의 유혹에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김영갑 갤러리. 알만한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천재 사진작가란다. 야외전시장에는 김영갑의 벗 김숙자의 토우작품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홀로 그리고 함께’ 라는 시를 보면서 예술을 하는 그들의 만남은 모든 것이 낯설어 어지러워할 때 선 뜻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주던 길동무였던 모양이다. 사진작품은 용오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곳을 유토피아로 본 모양이다. 상상속의 이어도. 꿈은 나다움을 지킬 때 가능하다.

혼인지 마을. 탐라국의 시조인 삼신인(梁을라,高을라,夫을라)과 벽랑국에서 시집온 3공주가 혼인한 장소다. 이때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온다. 입구에 자귀나무가 있다. 잎이 밤에는 포옹하듯이 붙어 지내기에 금슬 좋은 부부에 비유된다고. 신방굴은 3가지의 가지굴이 있는데 삼신인과 공주가 첫 날 밤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혈거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대수산봉. 주변을 조망하기에 적합하여 예전에는 봉수대 터로 사용되었다. 고성리에 있는 두 개의 오름 중 큰 오름인 큰물뫼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라산부터 동으로는 시흥지역이 남서쪽으로는 일출봉과 광치기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오름에서 내려오니 더덕선별작업을 하는 창고가 있다. 말을 걸어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만 한다. 입구에 선별작업하면서 상품가치가 없는 더덕을 한 줌을 챙겨서 돌오름으로 향하고 있다. 입구에 도착하니 조류독감감시원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우회하여 마을길을 지나는데 간판하나가 시선을 끈다. “‘일상에 위트를 더하다. B일상잡화점’ 창문에는 ‘일상에 위트를 더하다는 슬로건아래 집에 사가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 맞을 것들을 모아모아 판매합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장사를 재미로 하는 듯하다. 이곳 또한 관광객이 발길을 끊어 문이 잠겨있다.

시흥리 마을. 올레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한자어에 답이 있다. 처음 시始일 흥興, 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100년 전 시흥리가 포함된 정의군 군수(채시강)이 맨 처음이란 뜻으로 시흥리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시흥리에서 시작하여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종달리의 종은 끝낼 종終이다. 말미오름을 가는 농로는 돌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름에 맞게 약1.5km을 뛰었다. 말미오름은 말머리처럼 생겼다. 주변은 성산포 들판이 펼쳐져 있고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정상부위에 간세-제주 조랑말로서 제주올레의 상징-가 있고 주변을 조망하는데 어린이들이 몰려온다. 이어도 홍보활동하기에 제격이다. 현수막을 펼치고 이어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아마 시흥초등학교 학생들로 추정된다.

말고기를 먹기로 한 날이다. 지인이 추천한 식당에 연락하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맛 집을 추천해 준다.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요즘은 식용으로 키우고 있단다. 주인장이 상냥하고 부위별 특성을 잘 설명해 준다. 장단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추가메뉴가 나온다. 왕족이란 말에 딴지 걸었던 일행은 말을 잘하니 말고기 집에서 혜택을 본다고 한다.

 

올레21코스; 영불덕-지미오름-해녀박물관

아침에 티브에서 00구청 공무관이라는 사람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을, 척추가 마비된 남자가 ‘모나리자’를 부르고 있다. 도전정신이 아름답다. 청춘의 꿈이란 게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극기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지미오름. 종달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66m의 야트막한 오름. 북향으로 말발굽분화구가 있는 오름. 조선시대는 정의현소속의 지미망이라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삼나무와 해송이 눈에 들어온다. 산을 내려오니 허기가 진다. 세화리를 돌면서 다방주인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주에서 온 시어머니와 구미에서 온 며느리가 운영하는 밥집. 빨간색 작은 간판-세화야참-은 경양식분위기인데 한식집 아니 그냥 밥집이다. 된장찌개와 고등어가 가정식으로 정성스럽게 한 상 차려진다. 소리 소문 없이 아름답게 살기위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영등바다에 들렀다. 물질하고 들어오는 해녀에게 미역과 소라를 샀다. 저녁이 기대 된다.

별동진. 하도의 까페 마을을 돌고 나오는데 내 또래 남자가 가게에서 과자와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간다. 코로나 때문인가? 해녀박물관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는다. 해녀들의 일본저항운동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 역사의 현장인 제주도는 저항의 도시, 항거의 도시, 생존의 도시 이다. 이제는 화해와 상생, 평화와 희망의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여행 마지막 밤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이다. 머리도 식힐 겸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돌고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S호텔을 예약했다. 해변을 산책하다가 시간이 되어 자리로 찾아드니 피아노 반주와 함께 공연준비를 하고 있다. 다가가 신청곡을 넣었다. 잠시 후 여자가수가 You raise me up을 부르고 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버팀목이 되어준 노래.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기에 험한 산도 넘고 거친 파도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이어도離於島의 중요성을 알리는 애국운동에도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감미로운 밤이다. 식욕이 올라 랍스타를 잔뜩 먹고 한라산 불로탕(?)을 마시면서 인생의 포만감을 느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