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기-TY

You Raise me up :: 제주 여행기 애국 운동

벽암선생 2021. 3. 5. 23:20

梁泰龍(나를 찾는 論語여행 저자)

 

37년 동안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나왔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22일간의 여정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건너편 가게의 간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국어사전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번 항목에 시선이 머문다.

“‘얼굴, 생김새를 속되게 이르는 말 -간판은 훤한데 속은 개차반이야 

풀이와 예시까지 제시하고 있다. 

참 얼굴값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직책에 맞게 행동해야 하고 처해진 위치에서 처신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자유인이다. 간판을 내려놓으니 한결 어깨가 가볍다.

 

 여행의 명분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 곁을 지켜준 사람에 대한 보답과

이어도離於島의 중요성을 알리는 애국운동이다.

 

 

여행의 대강은 이렇다. 제주 올레 길을 걷는다. 

 

주요 지점에서 이어도 홍보 현수막

 

-해양주권 이어도를 지키자-

 

을 펼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어도를 알리는 것이다. 

아울러 남는 시간은 주변 관광을 하는 것으로. 

시간절약을 위해 숙소를 제주시내, 서귀포 화순

그리고 표선지역으로 이동하며 1주 씩 살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새벽에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다. 

열심히 달려 완도항에 도착했다. 

예정된 배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변 공원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육지에서 바다는 새로움이다. 

마치 37년 입었던 옷을 번지듯. 

내 가방에는 김시습 평전 한 권이 들어있다. 

불현 듯 김시습 처럼 살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김시습은 외모도 볼품없고 성격도 매몰찼고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이제 조금은 나 자신에게 거만하게 살고 싶다.

 

제주항에 내리자마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흑돼지식당으로 향했다. 

자글자글 삼겹살은 노랗게 익어간다. 

젓갈에 찍어 한 쌈 삼킨다. 

자유와 여유 그 언저리에서 이제 <나는 탐라국의 왕족이다>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탐라국은 3(을라,을라,을라)이 세웠기에 분명 나는 왕족이다. 

일행 중 한 명은 반기를 든다. 나의 답은 무지한 탓이로다.

도본무명道本無名-도란 이름 할 수 없는 것-아니던가.

<중용>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한다. 

하늘의 명령은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마음) (물질) (형상)가 정제되고 절제된 것이 아닌 그냥 이대로 면 어떤가. 

수염도 기르고 속박 없는 자유를 찾고 싶다. 

이런 생각 속에 올레길의 여정을 시작한다.

 

올레길 19.20코스; 하도-김녕-조천.

김녕 해수욕장 인근 까페에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현명한 사람인가. 

일상이 심심할 때 간을 맞추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이면에 돈 많이 있나보네 라며 조롱하는 면도 있다. 

인생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필요한 곳에 집중하고 중요하지 않는 곳에 비중을 두지 않는

안빈낙도의 의미를 새기며 나는 그대를 조롱한다.

 

행원포구. 광해군 기착비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한 컷 찍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이름하여 광해우光海雨-1641년의 제주는 극심한 가뭄을 겪던 중

광해가 생을 마감하자 많은 비가 내려 지독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칭함- 

광해의 아픔. 

애환을 잠시 생각해 본다. 

유배 중 모욕을 당하면서도 독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한 여름에도 펄펄 끓인 물만 마셨다고 한다. 

당파싸움의 피해자. 광해여! 편히 잠드소서.

 

저녁은 제주 시내로 들어와 귀아낭이란 식당에 들러 돼지 국밥으로 해결한다. 

귀아낭의 의미는 제주도의 6대 명당 양택 중 제 1의 길지란다. 

손님들의 면면을 보니 지역사람들이다. 

출입자 명부에 주소를 서울 이라고 적으니 주인은 긴장하는 눈치다. 

답변 또한 투박하다. 음식이 나왔다. 

내용물을 보니 돼지 부속이 아닌 원재료를 쓰고 있다. 

냄새가 없고 국물이 진하다. 몸에 온기가 도니 보양식임에는 틀림없다.

 

올레길 17.18코스; 조천-원도심-광령.

 

제주도는 외세의 침범이 잦았기에 곳곳마다 연대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가 있다. 

조천연대에 올라 바다를 조망해 본다. 

머리에 응어리진 것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좌측으로 작은 까페가 하나 있으나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옆에는 나무 한그루가 꺾어진 형태로 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서 있다. 

모진 세파를 이런 때 쓰는가. 

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무란 본디 태양을 보고 곧게 뻗어서 자라나는 것이 본성인데

거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니 꺾어진 형태로 자라나고

그 모습은 습성과 반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도 본디 태어날 때는 서로 비슷한 성품을 지니나 자라면서 습관에 의해 제각각이듯.

 

조천리 일대는 마을 자체가 제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우물, 목욕탕. 불턱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한 켠에는 유배된 선비가 행여나 임금이 불러줄까 학수고대하며

한양을 바라보았던 조록나무 기둥의 연북정이 말없이 서 있다.

조록나무는 나무결이 석류알 처럼 총총하여 단단하다. 

임금을 향한 마음 굳건히 지키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까. 

마을을 돌아 다시 얼마를 걷다보니

가게 유리창에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는 문구가 보인다. 

 

생활인으로 살면서 불필요한 근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근심이라는 단어가

 일어나지 않을 현실에 대한 가짜 증거

-걱정의 95%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통계-아니던가. 

제주 원도심으로 진입하여 보말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한다. 

주인아줌마는 무뚝뚝하나 맛은 일품이다. 

국물을 버섯으로 우려내고 보말과 감태를 풀어 넣어 걸쭉하고 담백하다. 

대식가를 위해 보리밥도 제공하고 있다. 

찬으로 나온 무말랭이 짱아치도 부드럽고 쫄깃하다.

 

도심의 사라봉은 제주시민들의 휴식처다.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산을 올라가고 있다. 

부인은 씩씩하고 발걸음이 가벼운데 남편은 발걸음이 무겁고 숨소리가 거칠다. 

숲속을 보니 열대림과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기에 군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기후조건 가리지 않고 자라는 게 소나무다. 


열대목과 공생하는 모습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생각한다. 

조화를 이루되 결코 하향 평준화를 이루지 않는 모습. 

이래서 군자라고 칭하는 가 보다.

 

저녁이 되자 제주 도심의 누웨거리로 이동하여 몇 군데 살피다 고등어벙커로 들어섰다.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행 중 한 사람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걷는 거리가 길어지고 체력소모가 많아 힘들다는 것이다.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걷는 거리를 조정하기로 했다. 

마음의 화합을 이루어서 인지 고등어조림은 맛이 일품이다. 

밑에 무를 잔뜩 깔고 양념이 잘 배여 술술 넘어간다. 

추가하여 대방어가 나오자 막걸리 잔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푸른 뚜껑의 제주 막걸리는 유산균 덩어리로 목 넘기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 회에 계속)